외할아버지 (월산 안성호) 관련 기사

/외할아버지 (월산 안성호) 관련 기사

외할아버지 (월산 안성호) 관련 기사

09월간사진
http://www.monthlyphoto.com/webzine/latent_img_view.asp?m_seq=14&page=1&s_seq=19

최계복, 구왕삼, 안월산 초창기 대구사진 이끈 3인방
초창기 대구 사진을 얘기하자면 최계복선생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 분에 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

저는 직접 만나뵙지는 못했고 구왕삼선생을 통해 얘기를 듣고 문헌으로만 접했습니다. 처음으로 대구서 사진학원을 만드는 등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었죠. 60년대 초에 미국으로 건너가셨는데 그뒤 소식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아마 미국에 가지 않았으면 대구 사진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최계복선생 외에도 초창기 대구 사진을 이끈 멤버로는 구왕삼, 안월산선생을 들 수 있습니다. 구왕삼선생은 53년 사광회를 만드셨고, 안월산선생은 54년 대구사우회를 만들어 10년간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자비를 털어 월산예술학원을 설립했고, 대구에서 처음으로 국전 초대작가에 뽑히는 등 사진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분이셨어요. 또 상당한 재산가였는데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라는 얘기를 종종하기도 하셨습니다.

최계복(1909~?) >>
일본에서 7년간 기계학을 전공하고 대구로 돌아와 34년 우리나라 작가로 구성된 순수사진가단체인 ‘대구아마추어사우회’를 만들었다. 37년에 ‘전일본 오리엔탈’, ‘일본 후지필름사진전’에 각각 특선해 일본 사진계에도 널리 이름을 알렸다. 한국인 최초로 백두산을 촬영하고 47년에는 후진양성을 위해 대구 동문동에 ‘한국사진예술학원’을 설립했다. 해방 후에는 ‘경북사진문화연맹’과 ‘대구사연회’를 조직하고, 해방 후 최초의 사진공모전인 ‘건국사진공모전’의 위원장을 맡았다.

구왕삼(1909~1977) >>
초기에는 작품활동과 평론을 함께 했으며, 47년 5월25일자 영남일보에 대구 사진계를 논평한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 평론이다. 일본 사진가 도몽 켄을 중심으로 한 리얼리즘 사진 이론을 도입, 전개했으며, 120여편의 사진평론을 발표하며 우리나라 사진계에 리얼리즘 사진을 뿌리 내리게 한 장본인이다. 20살에 동요집을 내고, 찬송가 편집을 맡는 등 음악과 문학 전반에 폭넓은 활약을 펼쳤으며, 1940년 대구에 정착하며 사진을 시작했다.

안월산(1909~1978) >>
본명은 안성호로 월산은 호이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살롱사진의 형식을 유지하며 한국적인 소박한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았다. 국전 사진부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동아국제사진살롱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65년 설립한 월산예술학원은 많은 사진가와 교육자를 배출해내며 대구 사진계의 명문학원으로 자리잡았다.

출처 대구사진사, 대구사진의 시대적인 흐름의 연구(강상규)

By | 2018-01-31T18:37:33+00:00 2월 27th, 2015|News|외할아버지 (월산 안성호) 관련 기사에 댓글 닫힘